베테랑, 중심은 악당 조태오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재벌집 도련님과 돈이 많든 적든 지킬 건 지키면서 살자고 말하는 베테랑 형사의 대결을 그린 영화 베테랑. 그런데 영화가 사회 정의 실현에 판타지를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쪽은 오히려 악당 조태오입니다. 조태오는 아이에게 웃는 얼굴로 마카롱을 건네준 뒤 곧바로 자신의 개에게 똑같은 마카롱을 던져줘 버리거나, 밀린 임금을 받으러 온 기사에게 돈을 주면서 아들한테 과자 사줄 돈으로 훨씬 더 큰 금액을 줘버리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희롱하는 인물입니다. 조태오는 그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느낄 고통에 대해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타인을 괴롭히는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문제제기를 당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해봤다면 그들의 감정을 상상하고 공감을 해보려고 노력했을 텐데, 지금까지는 그 누구에게서도 그런 말을 듣거나 제지를 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태오는 천성적인 악마가 아니라 서서히 악마로 만들어진 인물에 가깝습니다. 조태오 혼자서 악한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해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는 주변 환경이 그가 악해지도록 함께 도와준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조태오는 유독 승부를 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처음 등장 장면에서도 경호원들끼리 팔씨름을 붙이고 체불 임금을 받으러 온 트럭 기사에게도 다짜고짜 건투 시합을 강요하고 그 자신도 취미로 격투기를 즐길 정도입니다. 그러나 타인들과 불평등한 관계를 맺어온 것과 마찬가지로 그 모든 승부의 과정에서도 공평한 규칙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조태오는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모든 규칙을 무효화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도 그에게 왜 규칙을 지키지 않냐는 말을 아무도 하지 못합니다.
시작되는 사회의 정의와 그 의미
그런 조태오 앞에 세상에는 돈이 많든 적든 지켜야 할 룰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최초의 문제 제기는 임금을 체불당한 트럭 기사로부터 시작됐고, 사건의 냄새를 맡은 형사 서도철 그리고 전세대출 이자를 달고 살면서도 뇌물의 욕심을 뿌리친 아내와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면서 내부 고발을 결심한 조태오의 경호원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들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대항하지 못했던 조태오의 그 대단한 권력에 그렇게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건 잘못됐다고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베테랑이라는 영화 제목의 의미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즉, 베테랑들이 자신의 역할만 제대로 해내도 꽤나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으니 침묵하는 것으로 부당한 권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주지 말고 다들 베테랑처럼 살자라는 메시지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 아트박스 사장님 마동석이 조태오를 막아서는 연출을 넣은 것도 단순히 웃기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다수가 침묵하더라도 잘못된 것 앞에서는 잘못됐다고 나서서 말 한마디를 하는 것. 그런 작은 행동 하나가 꽤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마지막 장면에서까지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베테랑은 세상에 더 많은 베테랑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하는 작품입니다. 언젠가는 현실에서도 가능해질 거라는 희망을 보여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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